나는 죽어야 한다.
아침에 든 생각이 멀릿 속을 울리며 남자의 몸을 지배했다. 남자는 곧바로 얼마 달리지도 않은 자동차로 몸을 옮겼다. 할부도 끝나지 않았을 정도로 오래 운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번 갔던 곳이라 그런지 지도도 그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다. 춘천으로 가던 길이 머리 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악셀을 밟고 얼마나 달렸을까. 지나치는 차량에 색색마다 오만가지 후회와 좌절 그리고 분노가 그에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머릿 속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나는 죽어야 한다.
다시금 남자가 악셀을 밟으려는 찰나 칼치기를 하며 고급 스포츠카 한 대가 나타났다. 죽으려는 와중에도 정작 규정 속도와 교통 법규를 지키고 있던 자신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 스포츠카는 유려한 쏨시로 사이를 휘져으며 칼치기를 했다.
순간 그 차를 쫓기 시작하는 남자가 있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그의 죽음에 함께하기 좋은 상대가 나타난 듯 무작정 그 차량을 뒤쫓았다.
그러나 얼마나 달렸을까. 긴 언덕길을 끝으로 더는 따라갈 수 없었다. 아무리 밟아도 그 차량과의 간격은 벌어지기만 할 뿐 이었다. 마치 더는 따라오지 말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듯한 매정함도 느껴졌다. 그가 전날 느꼈던 부당함과 좌절이 다시 밀려왔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지배하던 생각도 밀려났다.
이내 쫓던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자는 차를 멈추어 근처에 있던 쉼터로 들어갔다. 이제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허탈한 감정이 물 밀듯 밀려오며 준비한 소주병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준비한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이내 취기에 오른 남자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어느 정도 우울함을 털어버린 듯 왔던 길을 돌아가는 남자의 앞에 사고 표지판이 보였다. 전날 밤에는 분명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만 거기에는 이틀 전에 난 고급 스포츠카의 사고를 알리고 있었다. 무언가 소름이 돋으며 남자는 잠시 차량을 새우고 사고 기사를 검색해 본다. 자살로 추정되는 작은 단신이 있었다. 그러자 남자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울고 싶었다.
그리고 더이상 그의 머릿 속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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