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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Design

[단편] 사망신고서를 쓰는 남자

by 게임혼 2008. 4. 12.

과거 리얼판타에 올렸던 글이다 개인적인 체험과 상상을 조합하여 만들었다.

 

--------------------------------------------------------------------------- 게임혼 --------

 

 때이른 여름이 오고 이제 막 더운 날인가보다 하고 생각할 만한 날이었다. 몸이 늘어지고 피곤하여 어느 곳도 가고 싶지 않았지만 불현듯 스치는 불길함에 오랜 지병을 가진 나로서는 3년 만에 병원을 가게 되었다.

3년간 남에게 말 못할 병을 잊고 살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나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간 얼마나 진행되었나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3년 전의 그 늙으수레한 의사가 나를 진찰했다. 피검사 소변검사 그리고 뭔가 이상한지 조직검사까지 대충 일주일간 검사로 시간을 까먹고 말았다. 그리고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으로 가자,


“준비하셔야 할거 같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해 졌더군요. 그간 아무런 징후도 느끼지 못했습니까?”

 안타깝다는 표정과 단어의 나열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이는 수술이 아니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그 길로 병원을 뒤로 한 나는 한참 공허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멍하니 버스를 타고 가다 집을 지나쳐 3정거장을 지나서 내리고 말았다. 다시 버스를 탈 생각도 못하고 그냥 집 쪽으로 걸어갔다.


 일단 땅을 밟고 걷기 시작하니 점차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자 머릿속에서 드는 것은 일단 가족생각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지만 나는 본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벌써 연락을 주고 받지 못한 시간도 반년이 넘었다. 그렇다고 이제야 집에 연락을 취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어차피 효도도 못한 세월 그냥 집에 이야기 하지 않고 혼자 죽는 게 낫다고 결론이 난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 새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왜 그리 서글픈지 병원에서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매 마른 내 눈물 샘을 비집고 나오기 위해 안달이었나 보다. 잠시 후 볼을 타고 찝찌름한 물이 대량 흘러내리고서야 뜨거움이 사라졌다.

 펑펑 울며 걷다 보니 집에 도착하였다. 다시금 멍하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TV도 없는 방안에서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을 했다. 울다보니 맘이 편해진 건지 원체 체념이 강한 성격이라 맘을 풀어버린 건지 내 삶을 정리할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간신히 마련한 월세 방 보증금은 부모님께 마지막 효도로 보내고 얼마 있지도 않은 집기는 주위에 나누어주고 온갖 계획이 새워졌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정오가 되어 잠을 청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 부동산으로 달려가 보증금 문제를 풀고 집으로 와 가깝고도 먼 친우들을 불러 각자 가지고 갈 물건을 고르게 했다. 간혹 이유 묻는 그네들에게 나 홀로 여행을 떠나노라 둘러대니 다들 수긍하는 눈치다. 한동안 평생 분 방문자들이 내 집의 문지방을 넘나들고 나니 텅 빈 방 안에 나와 단 벌 옷 한 벌 그리고 병원에서 가지고 온 진단서 봉투와 가방 하나 남았다. 그 뒤로 멍하니 빈 방에서 가방을 베게 삼아 누워 있다. 주머니에서 꾸낏한 종이뭉치를 꺼내 펼쳤다. 거기에는 내 인생의 종료를 그려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방에서 일거리를 찾아 서울로 왔을 때부터 나의 목표를 일목 간결히 적어 둔 종이였다. 그냥 멍하니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0 나는 서울로 올라와 성공한다. 1 글쟁이가 되어 우리나라 영화계를 살려보겠다. 2 영화글쟁이는 안되겠다. 다른 쪽으로 가자, 3 나는 최고의 게임 기획자가 되어 보겠다.”


 그 간 내가 서울에서 해온 일들을 그냥 적어 둔 내용이었다. 다시 금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붉은 펜 하나가 나왔다. 하필이면 붉은 색이냐 하면서도 운명인가보다 하며 엎드려 종이를 바닥에 펼치고 한 줄 써내려 갔다.


“4 마침 죽을 날이 되었다. 그간 하고 싶은 바도 없었거니와 내 생에 미련도 남지 않는구나 이제 홀로 남은 방안에서 나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니 이 볼품 없는 인생, 버리고 다른 모험을 떠난다.”


 성공하고자 했던 미련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나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을 때쯤 미련은 버려졌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내게 그러한 것이 남을 리 없었던 것이리라.


 다시금 종이를 꾸깃하게 접어 호주머니에 넣고 근처 동사무소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 걸음걸이에서 살짝 힘이 빠져 휘청이다 간신히 계단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암 것도 먹지 못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있나 지갑을 뒤져보니 달랑 만 원짜리 한 장이 나왔다. 동사무소에 가기 전에 허기나 해결하기 위해 근처 식당에 들어서 된장찌개 하나 시키고 먹기 시작했다. 어느 때와 같이 세상은 흘러가는 듯 거친 사람들의 말소리와 차량의 지나다니는 소리 그리고 음식의 맛도 느껴진다. 배가 고픈 탓인지 한 공기 더 시켜, 남은 된장 국물에 밥까지 비벼먹고 나서야 이제 이런 것을 느끼지 못 할거라 생각하니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 지기 시작한다. 때마침 눈물샘이 터질 라는 차에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내 대신 울어주는 하늘 덕분인지 눈물샘이 잠잠해 졌다. 우산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비를 맞을 것을 생각하니 찹찹해졌다. 낼 이면 죽을 놈이 비 맞을 걱정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다.

 구수하게 된장찌개 먹고 식대를 지불한 뒤 서둘러 식당을 나서 길거리에서 파는 3000원짜리 싸구려 우산을 샀다. 죽기 전까지 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 내리는 길을 걸어 동사무소에 도착해 시망 신고서를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빈 방에 다시 들어서 다시 가방을 베게 삼아 누워 가지고 온 신고서를 보고 붉은 펜으로 내용을 차곡차곡 써 내려갔다.

 글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때마다 머릿속에서 내 과거가 지나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암것도 모르고 살던 일이라 던지 집을 나서 혼자 살리라 작정했던 때와 후회되는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대충 신고서를 다 작성하고 보니 내 인생의 모든 부분을 한 번 더 흩고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배부른 노곤함 때문인가 비가 가지는 졸리운 리듬 때문인지 또는 내 인생의 마지막 불청객의 방문 탓인지 피곤함이 밀려오고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한다. 잠을 이겨내 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여도 그저 눈꺼풀이 감길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입을 살짝 벌려 한마디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할게 많은데...”

 그 말이 세어나가고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꿈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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