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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Design

[단편] 그리운 미소

by 게임혼 2006. 11. 20.

 눈부신 아침이 되었다. 노인은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고 간밤 추위로 긴장되었던 근육들을 풀어주며
천천히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주위에는 노인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일어나 자신들의 일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초췌하고 생기를 잃은 얼굴들.. 다르다 생각했던 노인이었지만 지금은
동질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서둘러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기 전에 화장실로 향한 노인은 천천히 거울을 들여다보며 단벌 뿐인
양복 때가 묻었는지 확인했다. 확연히 티가 나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밖에서는 지하철의
셔터문을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야 되겠다는 생각에 노인은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와
방금 출근한 매표소 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늘상 있어 왔던 일처럼 직원은 노인우대권을 한장
건내주었고 노인은 서둘러 개찰구를 통해 첫차를 탔다. 행여 늦기라도 할까봐 다급했던 것인지
계단을 내려오다 발목을 삐끗하여 넘어질뻔 하기도 했다. 노인이 이토록 서두르는 이유는 서울역
에서 지급되는 무료 아침을 먹기 위해서였다.

 

 50년간 봉사했던 직장에서 쫓겨나듯 퇴직 한 뒤로
사업을 했다 사기를 당해 무일푼이 되어 버린 그에게 하루에 한끼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노인이 서울역에 도착해보니 이미 줄은 까마득하게 서 있었고 자신의 차례까지
올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어디 갈 곳없는 노인은 기나긴 줄에 서서 배급을 기다렸다. 한 사람
다음사람..그리고 자신의 차례까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노인은 끝에 남은 적은 배식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그냥 입에 탈아 넣어도 될정도의 작은 양이지만 그거라도 먹는 것이 다행이라는 듯
노인은 조심히 음식을 입에 넘겼다. 그간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생각으로 인해 매번 먹을 거리를
얻지도 못하고 일주일을 보낸 탓인지 목에서 밥알들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게 쉽지가 않아 물을
몇 번이나 들이켜야 했다. 한숱 두숱 뜰때마다 적어지는 밥이 아쉬워 되도록 맛을 음미하려 했지만
오랜만에 맛본 밥맛에 정신없이 입에 넣을 뿐이었다. 이내 배식은 끝나고 노인은 부족하지만 일어
나 다시 지하철로 향했다. 이번에도 익숙하게 매표소에서 노인 우대권을 받아 지하철 실내로 들어선
뒤 노인은 잠을 청했다. 간밤에 노숙은 추위로 인하여 잠을 이루기 힘들었는데 지하철은 따뜻하게
해놓은 탓인지 잠이 솔솔 잘 왔다. 그렇게 얼마나 잠을 자는 것일까. 자는 내내 노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많은 일이 오고 갔겠지만 노인에겐 시끄러운 주정뱅이의 신세한탄도
지하철 치한에게 호통을 친 여성의 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잠만 잘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고 얼마 후 노인의 잠든 귓가에 왜인지는 모르지만 젊은 남녀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결정을 내려 주시겠습니까?"

 

 남자의 말소리는 격양되었지만 부드러운 것이 필시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상대방 여자는 남자의 말에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을 했다.

 

"아침부터 생각해 봤어요. 저도 네라고 대답할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는 걸요"

 

 여성의 대답을 기대했던 탓일까? 남성은 지하철 내부라는 사실도 잊은 듯 크게 기뻐하는 소리를 내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세연씨 우리 바로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갑시다."

 

 순간 눈을 감고 듣고만 있던 노인은 남자의 말 속에서 잊혀졌던 이름이 생각났다. 30년전 자신보다
먼저 떠난 아내의 이름도 세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살아 생전에 아내를 고생시킨 생각이 들자 노인의
눈가에 매말렀으리라 생각했던 눈물이 뜨거워진 눈시울에 성글성글 맺히기 시작했다.

 

 그간 얼마나
보고 싶었던 아내였던가 자식도 없이 두 부부만 살아오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로 30년간을
혼자 살아온 노인이었기에 그 슬픔이 지워지질 않는 탓이었다. 그런 노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바닥에 떨구어지려는 찰나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길이 노인의 눈물을 닦아내 주었다. 너무나도
부드러운 손길에 놀란 노인은 너무 오랬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자신의 앞을 바라봤다. 분명
지하철 안에서 잠을 청하였던 것인데 노인은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앞에는
아까 노인의 귓가에 들려왔던 대화의 상대로 보이는 남녀가 서로를 마주보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라 생각되서일까? 노인은 남녀의 모습에 시선이 간 뒤로 머릿 속에서
오랜시간 꺼내어 본적이 없던 모습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노인이 아내를 만난 것은 회사에서 였다. 첫 만남부터 한눈에 반해 반년간을 짝사랑 해오다
어느 날인가 꼭두새벽에 출근해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다 꽃다발을 전하고 청혼했다 그날
저녁에 회사 앞 공원에서 그녀에게 승낙을 얻었던 일이 노인의 눈 앞에 서있는 남녀를 통해 투영
된 것이다. 다시 눈물이 새어나온 탓인지 노인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다. 회한과 그리움
때문인가 그 흐느낌은 너무나도 처량했다. 그렇게 흐느끼는 노인의 등에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익숙하고 그리웠던 느낌을 받은 노인은 천천히 자신의 옆을 바라봤다. 어느 틈엔가 사랑의 밀어를 나누던 남녀중 여자가 벤치에 앉아서 그의 등을 토닥였던 것이다. 여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인에게 말을 건냈다.

 

 "태수씨 마중나왔어요."

 

 그러자 노인의 모습이 젊어지더니 아까 본 남자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자와 같이 젊어진
노인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그간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여자에게 건냈다.

 

 "사랑해. 여보..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그렇게 두 부부는 벤치에서 서로를 껴안고 행복한 재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딘가의 지하철에서는 전철 의자에 기대어 잠든 노인을 보며 한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저 할아버지 울어.."

 

 "아니야 얼굴을 보렴 웃고 계시잖아 분명 좋은 꿈을 꾸는 걸꺼야"

 

 삶에서 행복을 잃었던 노인은 깊은 잠을 통해 잃었던 행복을 찾게 된 것일까.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진 노인의 얼굴에는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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